이 글은 우리가 점점 자주, 강하게 느끼는 양극화와 승자독식 현상,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 기업활동과 마케팅에서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이에따라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현재의 승자독식 현상 속에서 콘텐츠 마케팅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하면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주의: 양극화와 승자독식으로 인해 개인이나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으며, 기업활동과 마케팅 활동 측면만 봅니다. 따라서 능력주의(meritocracy) 관점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020년. 코로나 외에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세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양극화입니다. 전 세계 사람들은 저성장 시대에서 새로운 경제질서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포퓰리즘에 점점 더 열광합니다.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의 독점에 대한 우려와 이에 대한 조치가 끊임없이 논의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부동산 가격이 오르지만, 특히 사람들이 선호하는 지역의 신축 대단지 브랜드 아파트가 훨씬 더 많이 오릅니다. 사회, 경제적 현상뿐 아니라 마케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셜미디어는 페이스북, 검색은 구글. 기타 정보나 개인간의 네트워킹은 네이버와 카카오. 다른 플랫폼은 쇠락해갑니다.
이 글은 이런 현상들에 대해 다음의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해 답해보는 내용입니다:
- 이런 일은 왜 생기는 것일까?
- 이래도 괜찮은 걸까?
- 앞으로 계속되는 걸까?
-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
(네트워크) 사회의 속성: 승자독식, 양극화
승자독식과 양극화로 인해 사실 지금의 사회를 지배해온 중력 법칙과 같은 것입니다. 코로나 19로 주말 외출도 적어지면서, 일요일 오후에 TV에서 하는 동물 다큐멘터리를 종종 보게 됩니다. 매번은 아니지만 꽤 자주 원숭이나 영장류들이 나오는데, 이들은 힘 싸움에서 이긴 우두머리 수컷이 나머지 모든 암컷들과 교미한다는 내용을 보고 새삼 놀랐습니다. 사람이 사는 사회는 경쟁논리가 이렇게 냉정하진 않지만, 비슷한 속성이 많습니다. 사회 현상의 여러가지 분포의 통계를 내봐도 승자독식 현상은 항상 존재합니다. 통계적으로는 이 승자독식을 멱법칙(Power law)이라고 부릅니다.
서론에서 거시적으로 얘기한 이 승자독식 현상이 우리 주변과 마케팅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지 예를 좀 더 들어보겠습니다.
- 검색엔진에서, 상위 1위가 클릭의 30%정도, 2위는 15%~20%정도, 1~10위 결과가 전체 클릭의 99%를 차지합니다.
- 우리나라에서 스마트폰은 갤럭시 아니면 애플을 씁니다.
- 스마트폰을 팔아서 나는 이익의 대부분은 애플이 차지합니다.
- 운동선수들의 실력차이는 아주 적지만, 어느 나라, 어느 리그에서 활동하는지, 그리고 그 적은 실력이나 성적차이에 따라 연봉은 수백배, 수천 배씩 차이납니다.
이런 식으로 승자독식 현상은 끝없이 나열할 수 있습니다. 승자독식이 나타나게 되는 가장 큰 배경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것입니다. 원숭이의 짝짓기 특징은 원숭이들이 무리생활을 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사람들의 사회는 이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사람은 다양한 집단과 사회를 이루고 살며, 이 집단간의 연결도 복잡하고 다층적입니다. 따라서 개인이든 생존과 번영에 도움이 되는 방식을 발견하면, 집단과 구성원은 이 방식을 빨리 공유하고 적용합니다.
결국 승자독식은 생존을 위한 진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 이라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물론 인간은 이 현상들에 동물과 다른 방식으로 적응하고 대응하며, 그래서 지금의 문명과 사회가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여기서는 더 자세히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승자독식현상의 기폭제: 네트워크 사회
위에서 승자독식 현상은 집단을 이뤄 살아가는 존재들의 숙명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삶의 모든 면에서 최근에 이렇게 승자독식과 양극화가 극단적으로 진행되는지의 실마리도 금방 떠오릅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네트워크가 확장하고 촘촘해지고 복잡해지기 때문입니다. 사회를 이루는 집단은 세분화되지만, 그리고 표면적으로는 집단간의 구분도 심해지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세부집단은 모두 동기화됩니다. 이 동기화 현상을 세계화 라고도 표현합니다. 세계화는 네트워크 사회 확장의 극단적 현상이고, 이것은 인터넷과 스마트폰 덕에 가능해졌습니다.
2020년의 BTS나 블랙핑크가 92년의 서태지보다 훨씬 활동 영역도 넓고 돈도 많이 법니다. 2010년 세계적인 축구선수의 연봉은 우리 돈으로 100~200억원이었지만, 지금 세계적인 축구선수들은 1000억이 조금 안 되는 연봉을 받습니다. 90년대 후반 마이클 조단이라는 특수상황을 빼면 농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승자독식 현상이 관심을 받게 되고 부각된 또 하나의 시기는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입니다. 이 때도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없었지만, 산업의 발전으로 사회 네트워크가 강해지던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에 승자독식의 법칙을 가장 잘 파악하여 설명한 두 인물이 바로 소득불균형 자료를 바탕으로 20/80 법칙을 제안한 빌프레도 파레토와 자본론을 쓴 칼 맑스입니다(그래서 파레토는 부르주아 버전 맑스라고 불리기도 하고, 파시즘의 영감을 준 원천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즉, 승자독식 현상과 네트워크 현상은 같은 것입니다. 네트워크 현상은 집단의 진화에는 좋지만, 구성원 중 승자가 되진 못한 이들에게는 돌아가는 몫이 상대적으로 줄어듭니다. 또하나의 문제는 이 승자와 나머지를 가르는 차이가 점점 작아진다는 것입니다. 야구에서 4할타자가 더이상 없는 이유는, 투수들의 실력도 상향평준화되어 예전 4할타자 정도의 실력이 지금 타자의 평균이기 때문입니다. BTS의 춤과 노래는 놀랍지만, 인지도가 낮은 그룹도 요즘은 칼군무를 다 잘합니다.
마케팅
마케팅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는 캠페인 아이디어, 광고 소재, 매체 운영관리 역량에서 광고주나 대행사마다 차이가 컸지만, 이 차이가 아주 적고, 이 작은 차이로 성과는 많이 갈리기도 합니다. 여기서 더 신기하고 큰 문제가 생깁니다. 이 차이가 너무 작아서, 성과도 일관되고 꾸준하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당신이 누구든 이 글을 보게 되는 이유도 이런 것입니다.
기업과 마케팅은 어차피 경쟁이기 때문에, 승자독식에서 밀려나면 선택지가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승자독식 현상으로 어려워지는 마케팅의 실마리는 콘텐츠 마케팅 이라고 생각합니다.
네트워크 사회와 콘텐츠 마케팅
콘텐츠 마케팅이 왜 승자독식, 네트워크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콘텐츠 마케팅은 승자독식의 법칙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콘텐츠 마케팅의 핵심은 ‘가장 잘 하는 것을 그것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 입니다. 그것을 사업 자체에서 찾든, 콘텐츠에서 찾든, 이것이 없으면 나머지는 무용지물입니다. 검색엔진 최적화는 해당 내용에 대해 가장 좋은 정보를 주는 콘텐츠를 쓰면 해결되고, 1등 브랜드는 광고 성과, 소셜미디어 참여도 더 좋습니다. 당연히 유통이나 판매도 유리하고 가격도 더 높게 받습니다.
21세기의 마케팅
승자독식 현상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예전과 지금의 차이는, 예전에는 과점 상황에서 2~3등을 해도 돌아갈 몫이 꽤 컸지만, 지금은 그 몫이 점점 작아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승자독식 현상 자체도 더 강화됩니다. 예전에 20/80 규칙이 적용되었다면 앞으로는 10/90, 5/95 규칙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케팅을 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승자가 된다
- 빨리 포기한다
1) 승자가 된다
승자가 된다는 말은, 현재 시장 점유율 1등이 아니면 다 죽으라는 말로 들립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 1등이 아무리 작은 영역이라도, 뭐라도 괜찮다. 그것을 찾을 수만 있으면.’ 입니다. 시장에는 계속 빈틈이 있고, 해결할 문제들이 있습니다. 오디언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 새로운 정보, 새로운 내용, 새로운 이야기를 원합니다. 팔고 싶은 물건, 서비스, 생각에 오디언스/고객이 정말 원하는 이야기와 정보를 연결할 수 있으면 됩니다.
승자가 된다는 말에서 중요한 점은, 규모 1등만이 승자가 아닙니다. 오디언스/고객 규모보다는 우선 해당 오디언스/고객에게는 대체할 수 없는 것을 줘야 합니다. 그것이 물건이든, 이야기든, 광고든, 가장 잘 줄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물건이나 서비스가 특별하면 광고 전달/배포가 좀 부족해도 고객이 찾아옵니다. 제품이나 서비스에서 차별점을 찾기 힘들면 이야기에서 차별점을 찾아야 합니다. 아니면 광고 집행을 정말 잘 해서 경쟁자들의 메시지는 안 보이게 해도 됩니다.
2) 빨리 포기한다
역시, 무조건 사업 접으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물론 접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빨리 포기한다는 말은 승자가 될 수 있는 영역을 열심히 찾기 위해 기존의 신념, 행동, 프로세스, 습관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작은 분야라도 승자가 되는 것은 어쨌든 어렵습니다. 운도 굉장히 많이 작용합니다. (운칠 기삼 같은 말은 진짜입니다)
콘텐츠 마케팅에서도 제작, 실행, 측정 등 모든 과정보다 미션 스테이트먼트를 잘 설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제작, 광고집행, 측정을 잘 해도 가장 잘 할 수 있는 영역에서 하지 못하면 효과가 없습니다. 반대로 모든 것을 평범하게 해도 가장 잘 할 수 있는 영역을 찾으면 효과가 큽니다. 즉 경쟁에서 이기기 훨씬 수월합니다.
마케팅 프로세스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로세스에서 안 되는 것은 빨리 포기해야 합니다. 마케팅에서는 정확한 미션-이에 맞는 목표-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는 모든 방법에 대한 가설설정과 지속적인 검증 이 중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오해하지 말 것은, 작은 영역에서의 최적화를 가설설정은 대개 효과가 없다는 점입니다. 광고 시안의 느낌, 광고 집행의 효율성 이전에 마케팅 목표, 콘텐츠 미션, 사업 내용 자체가 더 중요합니다. 하지만 대개 광고 집행, 콘텐츠 내용, 시안 등은 구체적이어서 이것을 최적화하는 일은 쉽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많은 조직이 여기에 시간과 노력, 예산을 할애합니다. 더 큰 영역이 제대로 안 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것들은 시간낭비입니다. 설령 단기적으로 광고집행을 잘 하거나 콘텐츠를 잘 만들어도, 이런 우위는 금방 따라잡힙니다. 아니면 플랫폼에서 이런 기능들을 흡수하여 적용하면서, 기존의 노력이 무용지물이 됩니다.
마치며. 승자의 몰락: 지대추구와 부가가치 창출
승자독식사회에서 승자는 갈수록 강해지기 때문에 영원히 승자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위를 이용해 경쟁을 억누르고 고객의 문제나 세상의 문제에 집중하지 않는 승자들은 결국 스스로를 조금씩 갉아먹으며 쇠퇴합니다. 우리나라에서 2010년 경까지 중공업이 잘 되다가 몰락하는 것, 아이폰으로 인해 휴대전화 제조사 판도가 바뀌고 기존의 강자들이 망한 것, 비디오 대여 체인 블록버스터가 넷플릭스에 밀려 흔적도 없어진 것 등 이런 예는 승자독식 현상의 예처럼 끝이 없습니다. 마케팅에서도 대행사들이 수없이 생기고 없어지며, 금방 번창하다 금세 쪼그라드는 현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몰락한 승자가 부가가치 창출 노력을 게을리 하고 지대추구를 하려고 해서 망했다” 같은 주장은 문제가 많습니다. ‘거봐 그렇잖아’같은 후행편향(hindsight bias)이 강하며, 모든 일에는 운이 훨씬 더 많이 작용한다는 점도 무시한, 오만한 생각입니다. 하지만 사회에든 고객에게든 부가가치를 주지 못하고, 일정 정도의 성공과 힘을 이용하여 현상 유지만 하는 조직은 존재가치가 적습니다. 사업에 성공한 후 임대료로만 이익을 내는 기업은 기업으로서 의미가 없듯이요.
마케팅도 마찬가지입니다. 수가 적든 많든 고객과 오디언스에게 도움이 되고 가치가 있는 사업에 대한 마케팅이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은 다시 고객과 오디언스에게 도움되는 스토리와 정보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