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언트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예산에 대해 언급할 때 마케팅 비용, 혹은 마케팅 투자 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이 단어들을 들을 때마다, 클라이언트가 이 둘을 구분해서 사용하는지 주의를 더 기울이게 됩니다. 우리 대부분은 어디선가 들은대로, 마케팅대한 지출을 마케팅 비용, 혹은 마케팅 투자 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마케팅 비용과 마케팅 지출을 구분하는 일은 사실 어렵습니다. 기본적인 구분만 하려 해도 사업의 목표, 현재 상황과 맥락에 맞추어 마케팅 활동을 계획하고 실행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업의 맥락에서 다소 멀리 있는 실무자도, 사업의 맥락은 더 잘 알지만 마케팅 활동에 익숙하지 않은 임원이나 경영진 모두 현재의 혹은 계획한 마케팅 지출이 비용인지 투자인지 혼동하기 쉽습니다.
마케팅 지출이 비용인지 투자인지를 제대로 구분하고, 이에 맞춰 활동한다면 마케팅의 성과를 개선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마케팅 비용과 투자를 구분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배경지식과 도구, 사례를 다룹니다.
1. 비용과 투자: 재무,회계적 차이
비용과 투자는 둘 다 재무, 회계 용어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재무제표에서 이 두 항목이 철저히 구분된다는 점입니다.
다소 지루하지만 재무제표부터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재무제표는 크게 손익계산서, 재무상태표, 현금흐름표로 나뉩니다.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이해해야 회사의 재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재무제표에서 비용은 손익계산서, 투자는 현금흐름표에, 그리고 간접적으로 재무상태표에 나타납니다.
비용과 투자의 차이를 간단히 말하면, 당장의 판매를 위해 필요한 지출은 비용이고 지금의 지출이 장기 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투자입니다. 좀 더 손에 잡히게 생각해보면 이렇습니다. 사무실에서 복사용지를 구입하면 비용이고, 미래에 늘어날 제품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혹은 생산비를 절감하기 위해 공장을 지으면 투자입니다.
다시 마케팅으로 돌아와서, 그러면 마케팅 비용은 재무제표에서 어디에 표시될까요? 손익계산서에 표시됩니다. 이로 보아, 재무 회계 관점에서 마케팅은 비용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회계적 구분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회계 기준 공식적이고 국제적으로 통용되기 때문에, 세상의 변화를 빠르게 반영하지 못합니다. 마케팅 비용이 이런 허점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지난 30-40년 간 기업의 자산 중 무형자산의 비중이 크게 증가했지만, 회계 기준은 20세기 중후반 이전의 제조업, 유형자산 중심 기업에 기반합니다.
무형자산에 대한 지출 상황을 좀 더 잘 반영하는 사례로는 넷플릭스가 있습니다. 넷플릭스의 콘텐츠 제작 및 구입 비용에는 투자의 성격도 들어 있습니다. 콘텐츠를 출시하면 출시 직후 가장 많이 소비되지만, 다양한 콘텐츠가 쌓여 있어야 회원 가입이 늘고, 기존의 회원이 빠져나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넷플릭스의 현금흐름표를 보면 손익 계산서에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콘텐츠 지출을 표시합니다.
2022년을 예로 들면, 넷플릭스는 손익계산서 상 순익이 약 4억 5,000만 달러이지만, 실제로는 손익계산서에 나온 것보다 콘텐츠 지출이 2억 8천만 달러 정도 많았습니다. 달리보면, 넷플릭스는 계속 투자 중입니다. 2020년에는 상대적으로 콘텐츠에 투자가 적었고, 2021년에는 이를 크게 늘렸으며 2022년에는 조금 줄였습니다. 여담으로, 넷플릭스의 주가가 폭등하는 시나리오 중 하나는 실제 콘텐츠 지출은 덜 하고 감가상각은 크면서 매출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만들어 놓은 콘텐츠가 매출에 기여하고, 추가로 콘텐츠에 지출을 하지 않아도 되면 그만큼 회사의 수익성이 좋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스트리밍, 콘텐츠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넷플릭스도 쉽게 콘텐츠 투자를 줄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마다 지출한 콘텐츠 비용은 (회계적 가정으로) 수명을 다 한 것들을 제하고 330억 달러 정도입니다.
넷플릭스는 콘텐츠 지출을 이렇게 회계상으로 어딘가에 표시라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케팅은 어떨까요? 특히 마케팅 비용을 많이 쓰고 브랜드 가치가 중요한 기업들은 모두 이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브랜드의 가치는 중요한 무형자산이지만, 표시할 자리도 없고, 측정하기도 힘듭니다.
브랜드 가치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은 이익률입니다. 소비재에서 비슷한 제품을 파는 회사 중 이익률이 지속적으로 높은 회사가 있다면, 그 회사의 브랜드 가치가 높습니다.
글로벌 스포츠웨어 브랜드별 영업이익률 추이
브랜드 가치의 차이를 더 극단적으로 알 수 있는 사례는 국내 유제품 브랜드 입니다. 2013년 대리점 강매가 공개된 이후 남양유업에 대한 여론이 나빠졌고, 브랜드 가치는 낮아졌습니다. 그래서 할인을 많이 하거나 PB상품 공급의 비율을 늘려야 했습니다. 매출 이익률은 지속적으로 낮아져, 현재는 강매 사건이 알려지기 전인 30%의 반 정도가 되어 약 15%입니다. 경쟁사인 매일유업의 이익률이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는 것과 대비됩니다.
국내 유제품 가공 회사 매출이익률 추이
브랜드 가치를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해왔던 지출은 재무제표에 남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통 브랜드 가치가 높은 회사들은 자산 수익률이 일반적인 회사들보다 월등히 높습니다. 자산으로 기록되어야 할 투자가 비용으로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재무제표에는 마케팅 투자로 인한 자산 가치가 사라졌지만, 여전히 확인할 수는 있습니다. 코카콜라나 펩시처럼 브랜드 자산이 강한 회사는 (순)자본수익률이 일반적인 기업 대비 월등히 높습니다. 하지만 이런 회사들의 과거 마케팅 투자를 통한 브랜드 자산을 재무제표에 제대로 포함할 방법이 있다면, 이 수치는 낮아질 것입니다.
음료 회사의 2022년도 자본수익률 비교
2. 마케팅에 적용
비용과 투자 이해와 판단이 중요한 이유
현재 마케팅 지출에서 어느정도가 비용이고 어느정도가 투자인지를 이해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비용과 투자 구분을 얼마나 잘 하는지는 이익은 물론 장기 성장, 생존의 문제에까지 영향을 줍니다. 마케팅을 투자로 봐야할 때 비용으로 보면, 성장의 기회를 놓칩니다. 마케팅을 비용으로 봐야 할 때 투자로 보면 해당 사업이 망할 수 있습니다.
마케팅을 비용으로 볼 것인지, 투자로 볼 것인지에 대한 방향에 따라 전략과 세부 계획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방향을 잘 설정하면 세부적인 실행도 훨씬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조직 내부 및 외부를 통해 활용할 자원을 찾는 일에서도 선택지가 명확해집니다. 전체 예산은 물론 세부 예산에 대해서도 관점을 갖고 접근할 수 있습니다. 남들이 하는 만큼, 혹은 의사결정권자의 감, 대행사가 제안하는 만큼 이 아니라 더 합리적이고 근거 있는 판단과 논의가 가능합니다.
비용과 투자 판단 경우의 수
비용과 투자에 대한 판단에 따라 프로젝트나 사업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마케팅을 투자로 접근해야 하는데 비용으로 접근하거나, 비용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투자로 접근하면 큰 손실이 생깁니다.
현실과 판단을 경우의 수로 그려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우리는 현실에 맞는 판단을 해야 성공합니다.
마케팅 비용과 투자 판단 경우의 수. 2×2 매트릭스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여 나은 판단을 하는 일은 물론 어렸습니다. 그리고 판단을 제대로 해도 상황이 급변하여 결과가 나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을 최대한 잘 파악하고 이에 맞춰 마케팅 지출의 성격을 규정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획득, 이탈, 가치
비용과 투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위에서 말했듯 단기적 매출발생을 위한 지출인지, 장기 성장을 위한 지출인지 입니다. 마케팅의 관점에서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서는 고객 획득, 이탈, 가치를 중심으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 고객 획득이 얼마나 쉬운가?
- 고객 이탈이 얼마나 많은가?
- 고객의 가치는 얼만큼인가?
이 세 가지는 긴밀하게 얽혀있기도 합니다. 마케팅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 이탈입니다. 고객 획득과 고객 가치는 판매하는 품목의 영향이 크지만, 고객 이탈은 회사의 브랜드와 마케팅에 따라 달라집니다.
획득, 이탈 고객 가치(LTV, Life Time Value)의 관점에서 마케팅을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셋 중 두 가지는 잘 되고 한 가지는 어렵습니다. 만약 셋 중 한 가지만 쉽다면 사업을 영위하기 어려울 것이고, 셋 다 쉽다면 지구상 최고의 기업에 가까울 것입니다. 대부분의 회사는 두 가지가 쉽고 하나가 어렵습니다.
획득, 이탈, 고객가치 세 가지 요소 중 두 가지씩을 갖춘 회사가 대략 어떤 형태인지, 그리고 각각의 경우 어디에 마케팅 비용을 쓰게 되는지를 그림으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고 보통 마케팅 지출은 투자건 비용이건 셋 중 어려운 것에 비중을 더 크게 두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고객 평생가치가 높고 이탈이 낮은 경우에는 획득이 어렵습니다. 통신을 생각해보면, 번호 이동이나 인터넷, TV 제공사 변경에 (불법)보조금과 사은품을 많이 줍니다. 이렇게 한 번 획득한 고객을 통해 낼 수 있는 매출과 이익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이탈이 많은, 달리 말하면 고객에게 다른 선택지가 많은 의류나 음료 같은 업종에서는 이탈을 줄이기 위해 리워드나 포인트를 제공합니다.
그래서 보통은 가장 어려운 것을 조금이라도 덜 어렵게 만드는 것이 투자가 됩니다. 하지만 경쟁, 해당 영역의 사업 특성, 현재의 산업 지형에 따라 일반적으로는 투자가 되는 영역이 비용 지출의 영역으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비용과 투자 구분해보기
경제 상황 등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는 가정 하에, 매출을 동일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마케팅 지출이 줄어들지 않거나 늘어나면 비용입니다. 역으로 시간이 갈수록 마케팅 지출을 덜 해도 매출을 유지할 수 있으면 마케팅 지출이 투자입니다. 앞서 투자와 비용의 차이에서 투자는 장기 성장을 위한 지출이고 비용은 당장의 매출을 내기 위해 필요한 지출 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해놓은 마케팅 지출로 인해 나중에 획득 비용이 줄어드는 효과가 생긴 것입니다.
마케팅이 투자인 경우이고, 이에 맞춰 투자하는 경우는 성공하는 브랜드들의 초기 마케팅 비용 지출입니다. 만약 초기 기업이나 제품이 마케팅에 크게 투자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장 속도가 빠르다면, 마케팅을 통해 이 성장을 더 가속화할 수 있습니다. 특히 브랜드가 중요한 경우는 적극적인 브랜드 마케팅이 유효합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대규모 마케팅 지출 없이 유기적인 성장이 가능한지 입니다. 마케팅 지출이 많지 않아도 유기적인 고속성장이 일어나고 시장이 충분히 크다면, 마케팅 지출은 투자가 됩니다. 하지만 마케팅 지출이 크거나 사업 초기라고 해서 이 지출이 투자라고 오판한다면 프로젝트나 사업이 망합니다. 어느정도 자본이 있고 야심차게 시작하는 여러 신사업에서 흔히 나타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우리 대부분에게 마케팅은 비용이 됩니다. 마케팅이 투자가 되려면 장기적인 접근, 수익률에 대한 높은 확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조직에서 단기 목표나 상황에 대응하다보면 마케팅에 투자로 접근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당장의 광고 집행과 성과도 채우기 어려운데 장기적인 안목이나 투자라니요. 하지만 마케팅 지출이 비용이기만 한 상황에서는 미래가 없습니다. 미래를 위한 지출인 투자를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성과가 돌아올까요? 혹시 그런데도 미래에 성과가 돌아온다면 마케팅 활동과 지출 덕이 아니라 외부 변수의 변화 때문일 것입니다.
지난 3년, 우리는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에 돈은 많이 풀리는데 여행, 식당 등 서비스 이용이 제한되니 가전, 컴퓨터, 자동차, 의류 등의 산업 및 온라인이 급성장하는 상황을 보았습니다. 이럴 때는 마케팅을 비용으로만 지출하는 회사나 투자로 접근한 회사나 모두 함께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마케팅 ‘투자’ 성공적으로 되어 있는 회사는 외부 변수의 타격을 덜 받고 혜택은 더 많이 봅니다.
코로나 전후의 아디다스와 룰루레몬을 비교해보면, 룰루레몬은 코로나의 타격을 덜 입고 코로나로 인한 타격 이후의 성장도 빠르고 가파릅니다.
코로나 전후 매출 성장률 비교(룰루레몬 vs. 아디다스)
물론 룰루레몬은 코로나 이전에 고속성장하는 브랜드였고, 성장의 여지가 컸습니다. 그리고 아디다스는 이미 성숙하고 시장에서 더 성장할 여지가 더 적었기 때문에, 마케팅 지출에서 투자보다는 비용이 더 큰 회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외부 요인이 있을 때도 과거 마케팅 지출의 성격이 투자인지 비용인지에 따라 그 결과는 크게 달라집니다. 사실, 외부 요인을 통해 이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 대부분은 마케팅에 투자가 필요할 때는 투자를 하지 않고, 비용으로 접근해야 할 때는 투자라고 생각하고 큰 지출을 하여 돈을 날립니다. 그래서 투자와 비용을 구분하는 판단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산업 특성과 경쟁 지형, 회사 자체의 지출과 이익 등의 정보를 통해 지금의 지출이 비용인지 투자인지, 얼만큼은 투자를 해야 하고 얼만큼은 비용으로 써야 하는지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종합적인 판단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마케팅 차원에서 좀 더 간단하게 생각해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지금 핫하고 비싼 마케팅은 비용일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구축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어렵지만 보상이 돌아오긴 하는 것들은 대개 투자입니다. 물론 여러가지 방법을 종합적으로 운영하면서 상황 변화에서 생기는 기회를 잘 포착한다면 핫하고 비싼 방식들을 많이 써도 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핫하고 비싼 마케팅을 하지만 그 비용 대비 수익을 지속적으로 잘 내는 방법이 있다면 남들에겐 비용인 마케팅이 나에게는 투자일 수도 있습니다.
마치며
비용과 투자를 구분하는 것은 사업에서 매우 중요하며, 마케팅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마케팅에서는 특히 비용과 투자를 구분하기 어렵고 우리는 이런 구분에 익숙하지도, 능하지도 않습니다.
사업이나 상황의 한계를 감안했을 때, 마케팅을 통해 성과를 내는 방법을 비용과 투자 관점에서 말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지금 상황에서 마케팅 지출이 비용인지 투자인지를 최선을 다해 구분하고, 그에 맞춰 활동과 지출을 해야 합니다. 설령 선택지가 적더라도 선택지가 적다는 것을 인지한 채로 움직이는 것과 아닌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 현재 마케팅 지출이 비용 중심이라면, 조금이라도 투자 관점에서의 지출을 해야 합니다. 비용만 지출한다면 상황 변화에 취약하고, 미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