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에서는 무의미 지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해보면, 무의미 지표는 많은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실제로 마케팅과 사업에 크게 도움이 안 되는 지표입니다. 조회수, 페이스북 등의 좋아요, 팔로워 수 등이 대표적인 무의미지표입니다.
무의미 지표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조회수가 없는 것보다는 많은 것이 낫고, 페이스북이나 소셜 미디어 팔로워도 조금이라도 많은 것이 좋긴 합니다.
무의미 지표의 대표적 문제는 두 가지입니다. 많은 마케팅과 광고 예산이 이런 무의미 지표를 위해 낭비되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무의미 지표가 정말 중요한 지표를 위한 노력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고, 마케팅과 비즈니스에 더 도움 되는 의사결정에 방해하는 것입니다.
액셔너블 지표: KPI의 퍼즐조각
이런 무의미 지표와 상반되는 개념이 액셔너블 지표입니다. 액셔너블 이라는 말은 영어로 actionable입니다. 우리말로 풀면 조치 가능한 지표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조치가 가능하다는 것일까요?
저는 액셔너블 지표가 ‘정당하고 합리적인 노력을 통해 개선 가능하며, 개선했을 때 마케팅/사업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는 지표’ 라고 생각합니다.
액셔너블 지표의 예 : 전환율
대표적인 액셔너블 지표로는 CTR, CAC, 전환율 등이 있습니다. 이 중 전환율이 어떻게 액셔너블 지표가 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전환율이라는 지표는 맥락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전환은 고객이 구매여정의 다음 행동으로 이동하는 행동입니다. 온라인 상거래 서비스라면 고객이 상품을 살펴보다가 장바구니에 담는 것, 장바구니에서 구매를 하는 것, 구매 후 리뷰를 남기는 것 각각이 전환입니다.
따라서 마케터로서 우리는 구매여정의 여러 단계에서 전환이 더 많이, 더 빠르게 일어나도록 고객을 도와야 합니다. 단순해보이는 구매 과정일지라도 전환의 단계는 생각보다 많고 복잡합니다. 따라서 여러 전환이 일어나는 여러 단계 중 전환율이 높은 것과 낮은 것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마케팅 성과를 높이는 방법 중 하나는 전환율이 생각보다 낮은 구매과정에서의 전환율을 높이기 위한 조치를 취하면 됩니다. 낮은 전환율은 대개 우리가 고객에게 원하는 행동과 실제 고객의 인지의 미스매치 문제입니다. 즉 고객이 찾는 것, 기대하는 것을 해당 채널이나 페이지에서 제대로 제공하지 않을 때 전환율이 낮습니다. 고객이 기대하는 콘텐츠나 정보가 부족하거나(관련성), CTA가 적절한 때 적절한 곳에 배치되지 않았거나, CTA 외의 유저 스토리(UX) 구성이 고객에게 맞지 않는 둥의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들의 이유를 찾아내서 적용하면 전환율이 올라갈 확률이 높습니다. 물론 항상 말처럼 쉽진 않습니다. 원인은 고객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오며, 고객을 이해해서 고객 중심으로 서비스를 구성하고 마케팅 채널을 운영하는 것은 모두의 영원한 숙제입니다. 어쨌든 고객을 좀 더 이해하여 현재 채널과 고객의 미스매치를 해소하는 행위를 하면 전활율이 올라갑니다. 전환율이 올라가면 단기이건 장기이건 당연히 매출이 높아집니다.
간단하게나마 전환율이라는 액셔너블 지표의 액션과 결과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지표 : 전환율
- 조치 : 관련성 개선, CTA 배치, UX, 더 나은 콘텐츠
- 결과 : 전환율 상승
- 영향 : 구독자 수 개선, 구매 기간 단축, 구매율 상승
액셔너블 지표에서 주의할 점 (=KPI가 중요한 이유)
하지만 액셔너블 지표라고 해서 모두 조치를 취하고 개선하면 안 됩니다.
따져보면 액셔너블 지표는 정말 많습니다. 마케팅을 현재 잘 하고 있건 부족함이 많건, 좀 더 개선할 부분을 찾다보면 어느 조직이나 수십, 수백 가지의 액셔너블 지표가 나오게 됩니다. 한 가지 액셔너블 지표를 위해 취해야 할 조치는 정말 많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조치들은 시간이 오래 걸리며, 여러 관린 부서나 회사와 협력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따라서 한 팀이나 회사에서 실제 개선할 수 있는 지표는 한 손에 꼽습니다. 그리고 이 지표의 수가 적을수록 효과와 효율이 좋아집니다. 개인이 동시에 여러 업무를 처리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여담으로, 멀티태스킹은 해당 태스크들이 중요하지 않고 무의미할 때만 가능합니다. 제대로 된 일은 한 번에 한 가지씩 해야 합니다.) 개인도 이런데, 업무의 복잡도가 증가하는 팀이나 회사에서는 지표의 수와 액션의 수를 가능한 만큼 줄여야 합니다.
이렇게 마케팅 목표와 가장 관련이 깊고 중요한 지표가 KPI(핵심 성과지표) 입니다.
KPI
KPI는 회사마다 모두 다릅니다. 업종에 따라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KPI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의 상황에 맞게 KPI 설정에 노력을 들이면 이후에 KPI를 달성하거나 개선하기 위해 드는 시간, 노력 비용은 줄어듭니다.
좋은 KPI의 조건은 아래와 같습니다.
- 현재 상황에서 가장 중요하고 개선했을 때 효과가 좋은 지표
- 단순한 수치화
- 팀이나 회사 구성원들이 쉽게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는 지표
- 최대한 단순한 지표
이런 지표를 만들려면 대개 여러 지표를 조합하고 다양한 실험을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혹은 업계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지표가 KPI가 될 수도 있습니다. 통신사들은 ARPU 나 고객 획득 비용 등을 비슷 비슷하게 파악하고 이에 따라 여러 활동을 합니다. 물론 그러다보니 번호이동이나 인터넷 설치를 할 때 수십만 원 이상의 불법 보조금을 뿌리는 출혈 경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학교생활의 KPI
회사마다 다른 상황을 모두 다루기 힘들기 때문에 학교의 예를 들어 KPI를 더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공부를 잘한다’고 할 때,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여러 과목에서 표준화된 시험을 쳐서 그 점수의 합이 높을 때 공부를 잘 한다고 합니다. 즉 학교 공부의 KPI는 표준화된 시험의 전과목 평균 점수입니다. 마찬가지로 ‘학교생활을 성실하게 한다’는 것은 출석률입니다. 그렇게 해서 학교를 다니는 동안 결석이 없는 학생은 개근상을 받았습니다.
전교 등수나 출석률 등이 학교 생활의 일반적인 KPI라면, 김연아 같이 스포츠에 재넝이 있거나, 수학, 과학이나 언어 등에서 비범한 재능을 보이는 학생은 등수나 출석이 큰 의미 없습니다.
(최소한 우리나라의)학교는 학생 개개인의 개성을 키우기보다 표준화된 기준을 따르게 하는 식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시험의 평균 점수와 석차 같은 단일한 KPI가 잘 동작합니다.
하지만 기업의 마케팅에서는 회사마다 강점, 경쟁상황, 고객군이 다릅니다. 따라서 흔히 쓰는 KPI를 단순히 적용하면 낭패를 보기 쉽습니다. 물론 기업활동에서도 더 포괄적으로는 전교 등수 같은 지표가 있습니다. 매출, 이익, 성장 등에 관한 지표입니다. 하지만 이를 위한 마케팅 지표들의 KPI는 좀 더 세심하게 노력을 들여야 합니다.
밸러스트의 KPI 사례 : 콘텐츠 완전 소비율
밸러스트아이앤씨의 KPI는 콘텐츠 완전 소비율입니다. 밸러스트는 콘텐츠를 판매하는 콘텐츠 기업은 아니지만, 콘텐츠 마케팅 에이전시로서 매월 두 번 2회 웹사이트에 올리는 글이 사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밸러스트는 글을 통해 마케팅 관련 여러 주요 키워드 검색 순위 1위를 차지합니다. 이렇게 해서 글을 보는 잠재고객들과 마케팅에 관한 생각과 지식을 공유하고, 잠재고객이 더 나은 마케팅을 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KPI 도출 과정
목표 : 우량 잠재고객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문의/의뢰
밸러스트는 마케팅에 예산을 일정 수준 이상 쓰는 기업이 신뢰를 기반으로 업무를 의뢰하는 문의를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하지만 저희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가격은 적게는 수백만원, 많게는 수억원 까지 분포가 다양합니다. 게다가 고객 수가 많지 않아도 됩니다. 따라서 유효 문의 수를 지표로 삼기는 어렵습니다.
후보 1: 마케팅 주요 키워드에 대한 오가닉 검색어 순위
밸러스트아이앤씨 웹사이트로 유입되는 주요 채널은 오가닉 검색입니다. 오가닉 검색은 70%~80%를 차지합니다. 검색엔진의 알고리듬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밸러스트의 조치도 모호합니다. 현재까지는 키워드를 고려하여 글을 발행하면 1-2개월 내에 대부분 검색어 1위에 오르지만, 저희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은 분명 아닙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양질의 콘텐츠가 검색순위 상위 랭크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오가닉 검색 순위 상위 상위에 노출되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해야하는지도 명확합니다. 양질의 콘텐츠 입니다. 하지만 ‘양질의 콘텐츠’라는 기준도 모호합니다.
그래도 ’콘텐츠가 좋은 것이 중요하다’는 가설은 세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콘텐츠 품질을 좀 더 잘 설명할 다른 지표를 찾아보게 됩니다.
후보 2: 이메일 구독
콘텐츠 품질을 설명하는 다른 지표로는 이메일 구독 수나 비율이 있습니다. 기존의 콘텐츠를 보고 ‘이런 것을 더 많이, 가장 먼저 보고 싶다’는 표현이 이메일 구독이기 때문입니다.
밸러스트도 이메일 리스트를 운영합니다.이메일 구독자는 콘텐츠에 대한 클릭률, 인게이지먼트 비율, 전환율 등이 다른 광고 채널에 비해 월등히 높습니다. 마케팅 수단으로 이메일은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에, 좀 더 높은 수준의 마케팅을 하는 회사들은 이메일에도 공을 많이 들입니다. 그리고 보통은 이메일 구독 팝업을 띄우는 식으로 이메일 구독 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밸러스트는 팝업 등으로 잠재고객을 방해하는 것을 무척 싫어하기 때문에 구독을 강제하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이메일 구독은 구매여정에서 문의보다는 앞선 단계이고, 쉽게 할 수 있는 전환입니다. 실제로 문의 수에 비해 이메일 구독 수는 몇십 배입니다.
하지만 이메일 구독도 KPI로는 부족합니다. 위에서 말했듯 이메일 구독으로의 전환을 위해 적극적으로 CTA를 적용하거나 활동하는 행위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최소한 밸러스트에서는 액셔너블 지표로서 부족합니다.
최종 후보: 콘텐츠 완전소비율
지난 번에 올린 글의 품질을 어떻게 지표로 만들 수 있을까? 라는 고민에 그나마 근접한 답은 ‘사람들이 열심히 보는 콘텐츠’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봐야 열심히 보는지 알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나몹니다.
밸러스트는 스크롤과 체류시간의 조합으로 콘텐츠 소비를 정의합니다. 즉 콘텐츠를 끝까지 스크롤해서 보면서 체류시간도 글 한 편을 읽을 정도로 긴 경우에 콘텐츠를 완전히 소비했다고 정의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을 하는 비율이 높은 콘텐츠가 많을수록 밸러스트는 양질의 콘텐츠를 많이 발행했다는 설명이 됩니다.
스크롤과 체류시간의 조합에 따른 콘텐츠 소비 형태는 아래처럼 나눠볼 수 있습니다.
- 스크를 끝까지 + 체류시간 짧음 : 대충 훌어봄.
- 스크롤 적게 + 체류시간 짧음 : 이탈
- 스크롤 적게 + 체류시간 김 : 딴짓.
- 스크롤 끝까지 + 체류시간 김 : 콘텐츠 완전 소비
물론 여전히 ‘좋은 콘텐츠’가 무엇인지는 정량적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리서치에 더 노력을 들이고,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쉽게 답을 얻지 못하는 주제를 찾고, 사소한 면에서 좀 더 신경을 쓴 콘텐츠들은 완전 소비율도 더 높습니다.
이 글은 KPI를 설명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위의 KPI를 설정하고 측정하기 위해 필요한 태그매니저나 애널리틱스 상의 작업은 생략했습니다.
좋은 KPI의 힘
실제로 콘텐츠 완전소비율과 완전소비 수는 장기적으로 매출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입니다. 물론 오가닉 검색 순위 상위랭크 페이지, 이메일 구독, 문의 수도 모두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신경쓰기 힘들기 때문에 콘텐츠 소비율이라는 지표 하나만 정해서 이에만 집중한 것입니다. 또한 개별 콘텐츠별로 소비율을 콘텐츠의 퍼포먼스로 정의하여, 퍼포먼스가 안 좋은 콘텐츠는 보완하거나 삭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퍼포먼스가 좋은 콘텐츠를 통해 향후 콘텐츠와 마케팅 방향을 세우는 데도 도움을 줍니다. 따라서 콘텐츠 실사까지 해주는 지표가 됩니다.
정리하면, 밸러스트에서 콘텐츠 소비율 이라는 지표는
-
-
- 마케팅 목표/미션을 잘 달성하고 있는지 파악
- 콘텐츠별 퍼포먼스 파악
- 향후 콘텐츠 방향, 마케팅 방향 파악
- 다양한 전환율 실험의 단초.
이 되었습니다.
-
KPI 설정에는 온 회사의 노력이 필요하다
KPI라는 말을 볼 때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는 말이 떠오릅니다. 언뜻 보기에는 쉽고 가벼워보이지만, 생각보다 여럿의 노력이 많이 든다는 말입니다.
KPI를 잘 정하려면 여러 부서의 협업, 조율에 설정과 실행에 관한 경영진의 의지까지 필요합니다. 당연히 어렵고, 잘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KPI에 이 정도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마케팅 활동을 진행하면 나중에 일은 더 많아지고, 예산은 더 많이 쓰면서 성과는 미흡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KPI를 만족할 수준까지 정하지는 못하더라도 지금 사용하는 지표에 대해 검토해보고, 액셔너블한 지표, 마케팅 목표와 관련성이 높은 지표들을 추려 단순화하는 노력을 기울이면 짧으면 몇 개월 마케팅 성과가 확연히 좋아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