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의 범람과 마케팅
2018년의 마케팅 환경 : 콘텐츠 제작과 배포의 보편화
훌륭한 콘텐츠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지금의 마케팅 환경에 대해 간단하게 짚어보겠습니다. 이제는 모두가 콘텐츠를 만들어 모두에게 배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싼 TV 광고비를 내지 않아도 충분히 여러 사람에게 팔고 싶은 물건에 대해 알릴 수 있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의 매체를 소비하는 시간도 전체적으로 늘어났습니다. 20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이 변한 세상 덕분에, 누구나 마케팅을 잘 하기만 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간단한 사진 한 장이나 글 한 줄이 글로벌 기업에서 천문학적인 액수를 쏟아부은 콘텐츠보다 더 효과적일 수도 있습니다.
어텐션 비즈니스의 무한 경쟁
하지만 이것은 모두 가능성일뿐, 현실은 녹녹치 않습니다. 그 이유는 마케팅은 기본적으로 어텐션 비즈니스이기 때문입니다.
마케팅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 중 하나는 관심(attention)입니다. 필요한 만큼의 관심을 끌고 붙잡아두는지가 마케팅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관심을 붙잡아두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모두가 콘텐츠를 올리게 되어 관심을 끌 기회 까지만 얻은 셈입니다. 하지만 모두 같은 생각으로 비슷한 활동을 하기 때문에 관심을 끌 확률은 여전히 희박합니다. 0과 0.0001 의 차이 정도 입니다.
과거의 4대 매체 시대보다는 마케팅의 선택지가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결국 사람들이 많이 보는 채널은 몇몇 플랫폼에 한정됩니다. 이제는 스마트폰 안에 있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트위터 가 과거의 MBC, KBS, SBS, 일간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이 안에서 개인, 기업, 조직이 모두 함께 콘텐츠를 올립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한정된 자원을 두고 경쟁하긴 마찬가지입니다.과거에는 신문지면이나 프라임타임의 광고 스팟을 두고 경쟁했다면, 지금은 잠재고객의 관심을 두고 경쟁합니다.
온라인 콘텐츠에 대한 몇 가지 숫자는 생각보다 놀랍습니다.
- 유튜브에는 1분마다 300시간(18,000분) 분량의 콘텐츠가 올라갑니다.
- 가장 보편적인 블로그 툴인 워드프레스에서 발행되는 블로그 포스트 수만 하루에 300만 건입니다.
- 페이스북에는 하루에 3억 5천 건의 이미지가 올라갑니다.
반면 우리 모두에게는 하루에 24시간이 주어져 있습니다. 세계적으로나 우리나라나,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이미 우리는 하루 수천 건 이상의 광고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한정된 관심을 놓고 다투는 방법은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채널을 장악하거나, 훌륭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합니다. 채널을 장악하는 일은 일단 돈이 많아야 하며, 요즘은 돈이 많아도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글에서는 훌륭한 콘텐츠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훌륭한 콘텐츠란? 부가가치
모두가 훌륭한 콘텐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모두가 스스로 훌륭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고, 혹은 만들려고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이 훌륭한 콘텐츠인지를 막상 알아보려면, 시원한 답을 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특히 마케팅 콘텐츠라면 규정하기가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후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본 콘텐츠, 인게이지먼트가 많이 일어나는 콘텐츠가 훌륭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방식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사람들의 많이 본 그 콘텐츠가 매출이나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었을까요? 가짜 통계도 많다는데, 제작업체나 광고대행사가 다양한 방법으로 수치를 조작하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등등 의문도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저는 훌륭한 콘텐츠의 기준을 부가가치 라고 생각합니다. 훌륭한 콘텐츠는 오디언스가 기존에 모르던 정보를 제공하거나, 필요로 하는 종류의 즐거움을 줍니다. 때로는 기존의 관념과 세계를 뒤흔듭니다.
밸러스트아이앤씨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저희 웹사이트의 목표 중 하나는 국내 마케터들에게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업이나 조직이 마케팅을 더 잘 하는 데 도움되는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주어지고 짜여진 광고 상품을 억지로 판매하고, 대행사에게 이익을 주는 플랫폼 이용이나 콘텐츠 제작을 유도하지 않습니다. 대신 클라이언트가 비즈니스 관점에서 마케팅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것이 밸러스트아이앤씨 콘텐츠의 부가가치이고, 저희는 이를 통해 콘텐츠 마케팅 대행사로서의 신뢰를 얻습니다. “콘텐츠 마케팅”, “신제품 마케팅” 등 여러 키워드에서 밸러스트아이앤씨의 콘텐츠가 검색결과 1위에 오르는 이유는, 부가가치 관점에서 콘텐츠를 제작했기 때문입니다. 콘텐츠 마케팅에 대해서 궁금한 사람들에게 최대한 자세하고 이해하기 쉬운 답을 하기 위해 고민한 결과입니다. (현재는 구글 검색결과에서만 1위입니다. 네이버는 좋은 콘텐츠와 정보 보다는 광고비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저희의 타겟 영역에서 제외했습니다.)
(그림: 오가닉 검색 1위임에도 소액으로 광고를 하는 이유는, 서비스를 판매하는 에이전시 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입니다.)
저명한 천체물리학자인 닐 드그라스 타이슨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세계관을 만족시키고 강화하는 창의성은 엔터테인먼트이고, 세계관에 의문을 제기하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창의성은 예술이다.” 듣기에 따라 엔터테인먼트의 가치를 낮게 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가치판단을 유보하고 볼 때, 창의성의 결과물인 콘텐츠가 우리에게 주는 부가가치를 잘 표현해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림: 닐 드그라스 타이슨의 트윗: 예술과 엔터테인먼트의 차이)
콘텐츠가 가치를 지니려면 무언가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지식을 확장해주는 것, 세계관을 확인하고 채워주는 것, 세계관을 흐트러놓는 것 등. 모두 훌륭한 콘텐츠의 역할입니다.
유행하는 콘텐츠가 훌륭한 콘텐츠가 되기 힘든 이유 : 경쟁과 고객의 상황
다시 국내 마케팅 콘텐츠 지형으로 돌아와봅니다. 업무상 타 대행사 및 기업의 콘텐츠 기획서와 제안서 등을 접할 기회가 많은데요, 저는 이 대부분을 “비싼 쓰레기 계획서” 라고 부릅니다. 이상하게도 훌륭한 직원, 제작진이 모여 고객을 모욕하는 콘텐츠를 계획하는 일이 많습니다. 어디선가 ASMR 콘테츠가 유행이라고 하면 어김없이 ASMR 콘텐츠가 기획서 내용의 한 부분을 장식합니다. 요즘 뜨는 연예인, 유행어에 맞춰 콘텐츠를 만듭니다. 이런 일들의 정확한 문제는 무엇일까요? 고객과 주변을 둘러보지 않는 태도입니다.
경쟁사의 활동
회사 입장, 특히 나이든 결정권자에게 말할 때는 현재 유행하는, 특히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는 콘텐츠나 말들이 신선하고 쿨해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고객들은 하루에도 수백 번씩 이런 유형의 광고를 보고 듣습니다. 온갖 회사에서 다 똑같은 컨셉으로 콘텐츠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고객의 상황
대부분의 문제는 고객이 어떤 환경과 맥락에서 콘텐츠를 접하는지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고객이 유행하는 콘텐츠를 정말 좋아할 가능성은 꽤 높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의 브랜드에서, 당신에 조직에서, 반복해서 내보낸 그 콘텐츠를 좋아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당신의 광고 콘텐츠가 인스타그램 피드에 계속 나오면서 좋아하는 사진과 영상을 보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요?
고객이 당신에게서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 더 보고 싶어하는 이미지나 영상은 전혀 다른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무엇일지를 찾아내는 것이 먼저입니다. 막연히 ‘이게 유행이니까 고객들도 좋아할 것이다’라는 가정은 위험합니다. 유행하는 것을 시도하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확인과 검증은 해봐야 합니다. (참고: 구매자 페르소나)
훌륭한 콘텐츠의 첫걸음: 컴포트존 벗어나기
이렇게 최소한의 확인과 검증 없이, 사회적으로 인기있는, 혹은 상사나 임원이 좋아할만한, 무난하고 욕 안 먹을 듯한 방향으로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은 확인과 검증을 이상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 CF 감독은 클라이언트가 자신의 CF를 몇몇 고객에게 컷 별로 보여준 후 가장 반응이 좋은 컷들로만 모아서 방영하도록 했다는 이야기도 들어봤습니다. 물론 전개는 엉망으로 망가졌겠지요.
이런 일들은 컴포트존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욕먹기 싫어서’ 라는 방어적 관점이 우리의 뼛속까지 녹아든 상황의 결과입니다. 사실, 욕을 먹지 않으면서도 컴포트 존을 벗어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중 확실한 열쇠는 고객 입니다.
컴포트존을 벗어나는 방법
오디언스 좁히기
우리는 마케팅 콘텐츠를 만들 때 너무 불필요하게 많은 것에 신경씁니다. 대부분의 고객은 당신의 브랜드나 조직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 당신의 브랜드에 인게이지먼트가 많은 고객과 실제 구매를 하는 고객이 꼭 겹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훌륭한 콘텐츠에 방해되는 여러가지 불필요한 잡음을 줄이기 위한 좋은 방법은 콘텐츠 수신자를 좀 더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합니다.
‘어떤 고객이 어떤 행동을 해야 현재 비즈니스 목표와 마케팅 목표를 더 쉽게 달성할 수 있을까?’
이에 맞춰 해당하는 고객군을 밝혀내고, 이 고객을 만족시키는, 그래서 원하는 행동을 유발하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합니다. 마케팅 목표에 따라, 상황에 따라 짧은 캠페인일 수도, 장기 프로젝트일수도 있습니다.
콘텐츠, 채널, 기간과 관계없이 마케팅 목표와 고객을 고려하여 콘텐츠의 수신자를 아주 좁게 규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좁힌’ 오디언스에게는 최고의 콘텐츠를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몇몇을 영원히 속이거나, 모두를 잠깐 속일 순 있지만, 모두를 영원히 속일 순 없다.”
콘텐츠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모두에게 훌륭한 콘텐츠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신, 규정된 오디언스에게는 누구보다도 훌륭한, 즉 해당 맥락에서 큰 부가가치를 주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오디언스가 어떤 것을 원하는지를 잘 파악해야 합니다. 소셜 미디어에 귀를 기울이는 방법도 있고, 오디언스에게 직접 물어봐도 됩니다. 콘텐츠 측면에서 경쟁자가 누구인지 파악하고, 경쟁자보다 좋은 것을 제공해야 합니다.
만약 최고의 콘텐츠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좀 냉정하게 말하면, 그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사업이 쇠퇴하고 사라질 것입니다. 적당한 것을 만드느라 시간, 인력, 돈을 쓰느니 안 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훌륭한 콘텐츠가 거창하고 대단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옷을 사고 싶은데 사이즈에 대해 고민이 많은 고객이 있다고 가정해보세요. 이런 고객에게는 사이즈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고객의 신체 사이즈에 맞게 핏에 대한 정보도 최대한 자세히 알려준다면 더 좋습니다. 이런 것도 훌륭한 콘텐츠입니다. 규정된 오디언스에게 특정한 맥락에서 도움이 되는 콘텐츠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제대로, 체계적으로 하기는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훌륭한 콘텐츠를 만드는 첫걸음으로 명확한 오디언스 규정과 메시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훌륭한 콘텐츠를 만드는 프로세스는 한 번에 이뤄지지 않고, 시간이 걸리며, 시행착오도 생깁니다. 이 프로세스를 좀 더 생산적으로 만들어주고 단축해주는 방법은 데이터와 테스트 중심의 사고와 업무방식입니다. 다음 편은 데이터와 테스트 에 관해 쓰겠습니다. 데이터는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고, 테스트도 생각보다 쉽게 해볼 수 있습니다.